FROM ME TO YOU #YOOINYOUNG


ISSUE / 2015.07.06



 우리 곁에, 유인영
Stand By Me


'가면' 유인영, 미워할 수 없는 악녀

도도하고 완벽할 것만 같은 여자에게 결핍이 있다는 걸 알게 될 때, 묘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때론 드라마 속 악녀에게 더 몰입되는 것은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드라마 ‘가면’에서 주인공보다 더 큰 존재감을 발현하며 악녀 역을 소화하고 있는 유인영. 내면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녀는 지금 배우로서, 여자로서 한창 영글어가는 중이다. 


"​이제는 단순히 주인공을 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새롭고 다양한 캐릭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저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하게 될 테죠."




말간 피부의 유인영이 큰 눈을 껌뻑이며 촬영장에 들어섰다. 전날까지도 빡빡한 드라마 촬영을 소화하고 왔다는데 푸석함이라곤 전혀 없는 모습이 놀랍다. 사실은 드라마 속 차가운 이미지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맑은 모습이라 더 놀라운 것 같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 옆에서도 지지 않던 한유라나, 이번 드라마 ‘가면’에서 서늘하도록 날카로운 대사를 내뱉는 얼굴이 맞나 싶다. 단장을 끝내고 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보니 다시금 TV 속 여배우의 그 모습이다. 이날 유인영은 디자이너 지춘희의 뮤즈가 되어 10년 만에 호흡을 맞췄다. 모델로 데뷔한 그녀가 런웨이에 올랐던 경험은 미스지컬렉션 무대가 유일하다. 런웨이 모델치고는 키가 크지 않은 편이었지만 여느 어린 소녀에게는 없는 특별한 느낌을 지녀 발탁된 것이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피식피식 웃게 돼요. 제가 패션 쇼 전문 모델이 아니었으니 키도 작은 데다가 깡마른 모델들 옆에 서니 저만 통통한 거예요(웃음). 게다가 기껏 배웠던 워킹을 오랜만에 하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 상태로 메인 무대에 올라서 걷고 있는데, 순간 같은 쪽 발과 팔이 함께 나가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요.”


모델로 데뷔한 후 자연스레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 지 어느덧 11년. 디자이너 지춘희가 기억하는 앳된 소녀는 여자가 되었다. 확실히 한결 더 예뻐졌단 느낌이 든다. 자신에게 딱 맞는 스타일을 찾은 듯 잘 어울리는 짧은 헤어스타일 후광일까 싶었는데, 평생 안 하던 운동을 한 덕분이라고 한다. 유인영은 드라마 ‘가면’을 시작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차갑고 도도한 도시 여자라는 비슷한 느낌이 반복되는 게 싫어서 무엇이라도 하겠다고 결심했고, 그 작은 실천 중 하나가 그렇게도 싫어한다는 운동이었다. 
“저 운동 정말 싫어하거든요. 급하게 살을 빼야 할 일이 있으면 먹는 것을 조절했지 따로 운동을 챙겨서 하진 않았어요. 근데 이번에는 스스로에 대한 마음가짐이랄까요. 사람들이 못 알아봐 줄지언정 내가 만족하면 그걸로 자신감이 생길 것 같더라고요. 다행히 전보다 선이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네요.”


유인영에게도 무명 시절이 있었나 싶다. 데뷔 후 지금까지 오랜 공백 기간 한 번 없이 드라마와 영화로 작품 활동을 이어온 그녀는 라이징 스타, 패셔니스타 등의 이미지로 주목받았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 차갑고 도회적인 이미지가 입혀졌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대중은 그렇게 인식했다. 하나의 이미지로 갇힌다는 것은 배우로서 꽤 두려운 일일 수 있다. 유인영은 이런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발버둥 치기보다 차분히 고민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묵묵히 해왔다. 잔잔하게 이어진 필모그래피만 봐도 느껴진다. 가끔은 더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고민도 했지만, 결국 천천히 가더라도 방향에 맞춰 가는 게 자신의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십대 후반까지만 해도 ‘왜 나는 안 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어요.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는데 내게 주어지는 역할은 비슷했거든요.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꼭 주인공이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주인공은 항상 순하고 착한 이미지잖아요. 이제는 단순히 주인공을 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새롭고 다양한 캐릭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저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하게 될 테죠. ‘별에서 온 그대’나 ‘기황후’에 특별 출연 형식으로 나간 것도 그전이었으면 생각지도 않았을 거예요. 다행히 반응이 좋았죠.”
 

차분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에서 세상의 흐름에 휘둘리지 않는 초연함이 느껴진다. 호들갑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단정한 모습이나 잔잔한 말투. 모두가 SNS로 자신을 알리는 요즘 같은 시대에 유명 여배우인데도 계정 하나 없다는 점이 오히려 신선하다.
 “사실은 한 달 전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했어요. 친한 동생이 하도 부추겨서요. 근데 2주에 한 번씩 할까 말까. 이것도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어요(웃음). 의도하지 않은 걸로 와전되는 게 싫더라고요.”
 

영화는 혼자서 보는 것이 제맛이라고 말하고, 연기가 아닌 다른 일로 주목받고 싶지 않아서 SNS도 잘 안 한다는 여배우라니 왠지 더 관심이 간다. 질문을 들을 때마다 큰 눈을 천천히 굴려가며 곰곰이 고민해서 얘기하고, 며칠 전 봤다는 영화 ‘스파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기도 모르게 까르륵 웃음을 터뜨리는 걸 볼 때는 세고 화려한 이미지는 작품 속 캐릭터일 뿐이란 생각마저 든다. 대중이 그녀를 인식하는 이미지가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도 어쩌면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다는 방증일 수도 있겠다. 
“연기자로서 인상적인 주인공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어요. 그런 작품을 만나는 기한을 앞으로 3년 정도까지 내다보고 있어요. 연기자로서 욕심을 낼 수 있는 마지노선 나이를 스스로 잡은 거죠. 앞으로 더 어린 친구들도 많이 나올 거고,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에 한계도 있을 거니까. 그 후가 되면 잡고 있던 그 끈을 놓고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생각보다 현실적이고, 생각보다 계획적이다. 그 계획 속에 결혼은 없을까. 
“결혼은 뭔가 그 전과 후가 확 바뀌게 되는 엄청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지금까지 한 곳만 바라보며 걸어온 세월이 아깝잖아요. 아직 전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웃음).” 


지금 주어진 것에 대해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듯 해결해 나가되, 앞으로 펼쳐졌으면 하는 상황에 대한 청사진을 넓게 그려보는 것. 그녀가 배우로서 사는 방식이다. 다음번에 전혀 다른 역할로 변신하고 나와도 놀라지 않을 준비를 해야겠다. 걱정 많고 매사에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녀가 오랜 시간 치열하게 준비하고 터뜨리는 것일 테니.









기획 박주선 기자
사진 이건호(studio dhal)
헤어 한지선
메이크업 김지현
의상 미스지컬렉션
출처 여성중앙 2015년 7월호